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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나들이 - 문화재34

담양 소쇄원 (潭陽 瀟灑園) - 명승 제40호 ■ 소쇄원 (瀟灑園) : 명승 제40호 소쇄원은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중기의 대표적은 원림이다.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조성한 것으로 스승은 조광조가 죽게되자 출세에 뜻을 버리고 이곳에 내려와서 살았다. 소쇄원이라 한것은 양산보의 호인 소쇄옹에서 비롯되었으며 말고 깨끗하단 의미다. ▲ 소쇄원 입장료 ▲ 소쇄원 교통편, 담양에 위치한 소쇄원이지만 교통은 광주에서 오는게 훨씬 편리하다. ▲ 한가로에 떠 노는 오리 ▲ 소쇄원 진입로 ▲ 竹林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 ▲ 광풍각(光風閣) : 비온 후 해가 뜨며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의 사랑방) ▲ 광풍각 현판 ▲ 오곡문(五曲門) ▲ 오곡문에서 흐른 물이 폭포를 이룬다. ▲ 산책로 ▲ 대봉대 ▲ 소쇄원 전경 ▲ 소쇄원은 정원은 대나무로 가득하다.. 2011. 11. 27.
공주 갑사 (公州 甲寺) ■ 갑사 계룡산 서쪽에 위치한 갑사는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위덕왕3년(556) 혜명대사가 보광명전 대광명전 등을 중건하여 신라의 의상대사에 의해 화엄종의 도량이 됨으로써 화엄종 10대사찰의 하나가 되었다. 통일신라 진성여왕 원년(887)에는 무염대사가 중창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조선시대 임진,정유왜란에 모든 건물이 불타 폐사됐던던 것을 효종5년(1554)에 사우를 개축하는 등 여러 차례 중수가 있었다. 갑사의 원위치는 현재의 대전적이 있는 곳으로 대형의 초석들이 정연하게 남아 있어 당시의 규모가 짐작되며 사명 또한 조선초기에는 계룡갑사라 불리다 후기에 갑사로 바뀐듯하다. 현존 건물로는 해탈물, 대웅전,대적전,적묵당,삼성각,진해당,팔상전 등이 이으며 표충원은 임란시 스병장 영규.. 2011. 11. 13.
공주 마곡사 (公州 麻谷寺) ■ 마곡사 태화산 기슭에 위치하 마곡사는 조계종의 대전,충남지역 70여사찰을 관장하는 대본산이며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질만큼 봄경치가 뛰어나다. 백제 의자왕 3년(서기643)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고 고려 명종 2년(서기1172)에 보조국사가 중건하였다. 절의 이름은 신라 보철화상이 법문을 열때 모인 대중이 삼밭의 삼대 같이 많다 하여 마곡사라 이름을 지은것이란다. 가람의 배치는 태극도형으로 사찰을 감싸고 태화천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오층석탑 과 대광보전, 대웅보전 등부처님의 공간을 상징하며 남쪽으로는 영산전및 매화당, 수선사등을 배치하여 스님들의 수행공간으로 배치하였고 이를 극락교로 연결하여 스님들의 수행 목적을 일깨우고 있다. 주위에는 영은암, 대원암, 은적암, 백련암, 청련.. 2011. 11. 13.
식장산 구절사 2009. 5. 24.
보문산 마애여래좌상 (寶文山 磨崖如來座像) ■ 보문산 마애여래좌상 ●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19호 ● 위 치 : 대전 중구 석교동 산 17-1 이 마애불은 고려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장수바위 남쪽에 앉아 있는 형태로 새겨져 있다. 불상의 머리에는 나발과 육계가 있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머리와 몸에는 둥근 모양의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새겼는데 광배의 바깥 윤곽은 자연 암반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선으로 나타내었고, 내부는 정으로 쪼아 내서 윤곽을 뚜렷하게 하였다. 선에는 부분적으로 붉은 색을 칠한 흔적이 남아있다. 옷은 양쪽 어깨에 모두 걸친 통견의(通肩衣)를 입고 있으며, 오른손은 감슴 앞에 들고 왼손은 그 위에 얹었으나 마모가 심하여 손의 모양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간략하게 처리하면서도 우수한 조각수.. 2009. 3. 7.
봉소루 (鳳巢樓) ■ 봉소루 (鳳巢樓) ○ 위 치 : 대전 중구 석교동 61-2 ○ 지정번호 : 문화재자료 제35호 봉소루는 조선 인조때의 학자이며 교육자인 남분붕(南奮鵬:1605~1674) 선생이 학생을 가르치던 곳이다. 선생의 호는 봉소재(鳳巢齋)로서 조광조의 학문을 이어받았고, 장예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를 지냈으며, 현종 15년에 세상을 떠난 후 통정대부, 형조참의에 추증되었다. 봉소루에서 '봉소(鳳巢)'는 새들의 보금자리란 뜻이다. 숙종 40년(1714)과 영조 34년(1758)에 고쳐 지었으며 뒤에 있는 한채는 ㄱ자형으로 윗방, 대청, 안방, 부엌이 있다. ◆ 하마석 유래비 하마석은 남분붕선생이 봉소루에서 후학을 양성할때 이곳을 지나던 선비들이 예를 갖추기 위해 말에서 내리고 오르던 디딤돌로 원래는 봉소루가 올려.. 2008. 12. 30.
한산도 이충무공유적 (閑山島 李忠武公遺蹟) ●한산도 이충무공유적 (閑山島 李忠武公遺蹟) ○ 사적 제113호 ○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이곳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세계 해전사상 길이 빛나는 한산대첩을 이룬 뒤 제승당을 짖고 1593년(선조 26) 부터 1597년(선조30)까지 삼도수군의 본영으로 삼어 제해권을 장악하고 국난을 극복한 유서 갚은 사적지이다. 제승당은 1597년 폐전되어 142년 후인 1739년(영조15) 통제사 조경이 중건하고 유허비를 세운 이래 1959년 정부가 사적으로 지정하고 여러차례 보수하여 왔으나 민족의 성웅을 모시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을 둘러본 후 공의 위업을 기리고 살신구국의 높은 뜻을 후손에 전하도록 지시함에 따라 경역을 확장하고 보수하여 19.. 2008. 6. 22.
공주 반죽동 당간지주 (公州 班竹洞 幢竿支柱) 공주 반죽동 당간지주 (公州 班竹洞 幢竿支柱) 보물 제150호 소재지 :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 301 시 대 : 통일신라 ▲ 대통사터 공주 반죽동에 위치한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대통사(大通寺)는 성왕 7년 (529)에 중국의 양나라 황제를 위해 창건된 절로서 당시 왕도였던 공주에서 최대의 절이었다. ▲ 당간지주 일제 강점기에 이 부근에서 '대통(大通)'이라고 세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이곳이 대통사터였음이 밝혀졌다. 발굴 당시 강당터, 회랑터, 금당터, 탑터, 중문터 등이 발견되었으나 그 뒤 다시 묻어 버려 그 자리에 민가가 들어오게 되었다. 현재 당간지주가 있는 위치는 탑과 중문 사이에 해당되는 곳이다. ▲ 당간지주 ▲ 반죽동 당간지주 당간은 절 앞에.. 2007. 4. 8.
우금치 전적지 (牛禁峙 戰蹟地) 우금치 전적지 (牛禁峙 戰蹟地) 사적 제387호 소재지 : 공주시 금학동 이 곳은 제2차 동학농민운동 때의 당시의 최대 격전지로 동학농민군의 원혼이 서려 있는 곳이다. 1894년 2월 전라도 고부에서 농민들이 관리들의 폭정과 부패한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해 보국안민(保國安民)과 제폭구약(除暴救約)을 맺은 후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하고 개혁을 추진하였다.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일제의 내정 간섭이 심해지자 2차 봉기를 하였다. 농민군은 동학의 남,북접 연합으로 충청도 감영인 공주를 공격하기 위해 공주 주변인 효포, 널티, 우금치 등에서 관군(官軍), 일본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신식무기로 무장한 진입군에 의해 농민군들은 이 우금치에서 마지막으로 처절하게 패배를 당함으로써 체포되거나 죽임을 당.. 2007.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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