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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나들이 - 문화재34

김여온의 묘 (金汝溫의 墓) - 대전 문화재자료 제16호 ■ 김여온의 묘 (金汝溫의 墓) ○ 위 치 : 대전 서구 괴곡동 산12 ○ 지정번호 : 문화재자료 제16호 ○ 소 유 자 : 김병욱 조선 중기의 무신 김여온(1550∼1592) 장군의 묘이다. 장군은 명종 5년(1550) 공주에서 출생하고 호는 석은(石隱), 본관은 김해이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여러 의병을 이끌고 청주에서 왜군을 물리치는 활약을 하다가 금산 연곤평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허나 시산을 찾지 못하여 자손들이 이곳에서 조혼장을 지냈다.. ↑ 좌측은 좁은 길로 간다. 주차 할 공간이 없기에 길가에 주차해야 한다. ↑ 유일하게 27번 버스가 묘 입구에 정차한다. ↑ 고추밭 사이를 가로 질거 간다. 묘를 가는 길이며 묘를 본 순간 당황했다. 문화재임에도 전혀 관리가 안되고 있.. 2013. 7. 15.
단재 신채호선생생가지 (丹齋申采浩先生生家址) - 대전 기념물 제26호 ■ 단재 신채호선생생가지 (丹齋申采浩先生生家址) ● 지정번호 :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6호 (1991년 7월 10일 지정) ● 위 치 : 대전 중구 어남동 233 ● 소 유 자 : 한국자유총연맹 대전시지부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은 일제시대에 역사가, 언론인,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했다. 26세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관직에 버리고 황성신문 기자가 되었다. 1905년 황성신문이 폐간되고 그 다음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초빙되어 시론을 써 민중을 계몽하고 정부를 편달하였다.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 4월 망명길에 올라 블라디보스톡에서 신민회 회원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위임통치에 반대하였다. 1923년 의열단의 이념.. 2013. 5. 16.
구 대전형무소 망루 (舊 大田刑務所 望樓) - 대전 문화재자료 제47호 ■ 구 대전형무소 망루 (舊 大田刑務所 望樓) ● 지정번호 :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7호 (2001년 6월 27일 지정) ● 위 치 : 대전 중구 목중로 48-2 ● 소 유 자 : 한국자유총연맹 대전시지부 대전형무소는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수감하기 위해 쪽바리들이 소규모로 설치했던것을 1939년 대규모 시설로 확장 준공하였다.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 많은 독립투사들이 수감되었고 최근 화가 이응로가 수감되기도 한곳이다. 한국전쟁 당시 연합군에 쫓기던 북한군이 1300여명의 양민을 포함한 6000여명을 학살하기도 했다. 1984년 교도소가 이전하면서 담장과 교도소 본관은 철거되어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남쪽의 망루와 우물만이 보존되고 있다. 혹시 '다카키마사오'가 잡아온 독립투사들도 있었을런가 추측해본다.. 2013. 5. 7.
조흥은행 대전지점 (朝興銀行 大田支店) - 등록문화재 제20호 ■ 조흥은행 대전지점 (朝興銀行 大田支店) ● 지정번호 : 등록문화재 제20호 (2002년 5월 31일 등록) ● 위 치 : 대전 동구 원동 51-1 ● 소 유 자 : 신한은행 이 건물은 1957년에 조흥은행 대전지점으로 건립되었고 현재는 신한은행 대전역금융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로 장식이 없는 화강석 평판 붙임으로 마감한 모더니즘 건물이다. ↑ 건물 정면 ↑ 건물 남측면 ↑ 건물 뒷면 ↑ 건물남측면 입구 ↑ 벽면 2013. 3. 15.
구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舊 東洋拓殖會社 大田支店) - 등록문화재 제98호 ■ 구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 (舊 東洋拓殖會社 大田支店) ● 지정번호 : 등록문화재 제98호 (2004년 9월 4일 등록) ● 위 치 : 대전 동구 인동 74-1 ● 소 유 자 : 김석진 ● 건립연대 : 1922년 12월 ● 건축양식 : 절충주의 양식 ● 관 리 자 : 신도철강 ● 시 공 자 : 오쿠라쿠미(大倉組) ● 건축구조 : 조적조(건립당시) ● 건축마감 : 외장타일 마감 ● 건축용도 : 건립당시- 금융기관현재, 현재 - 근린생활시설(점포, 사무실, 창고)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수탈 기관이었던 동양척식회사의 대전지점으로 지어졌으며 광복 후 체신청과 대전 전신전화국으로 사용되었다. 정면 2층, 위쪽의 페디먼트를 중심으로 양쪽이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위쪽 처마선 아래는 수평 돌림띠가 둘.. 2013. 3. 14.
한전대전보급소(韓電大田補給所) - 등록문화재 제99호 ■ 한전대전보급소(韓電大田補給所) ● 지정번호 : 등록문화제 제99호 (등록일 2004년 9월 4일) ● 위 치 : 대전 동구 인동 142-1 ● 면 적 : 1동, 2층 건축면적 792.83㎡ 연면적 1,546.01㎡ ● 시 대 : 일제강점기 ● 소 유 자 : 한국전력공사 이곳은 1930년에 지어진 붉은 벽돌조 솟을 지붕의 건축물이다. 2층규모의 발전소 시설과 3층 규모의 업무시설이 하나로 연접되 건립된 건축물이다. 구조적 안정성과 단순한 조형미를 갖춘 대전지역 최초의 근대적 산업시설물이다. 신축당시의 사진을 통해 화력발전소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2013. 3. 12.
박팽년선생유허 (朴彭年先生遺墟), 박팽년선생유허비 (朴彭年先生遺墟碑) ■ 박팽년선생유허 ● 지정번호 :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호 ● 위 치 : 대전 동구 가양동 161-1 이곳은 사육신의 한분인 박팽년 선생이 살았던 집터이다. 박팽년 선생은 1417년(태종17) 회덕현 흥농촌 왕대벌(현재의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에서 태어났다. 가야금 타기를 좋아해 '취금헌'이라 호를 지었다. 선생은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아 왕위에 오르자 성삼문, 하위지, 유성원 등과 단종 복위에 힘쓰다 실패하여 옥중에 사망하였다. 1691년 (숙종17)에 명예가 회복된 후 1758년(영조34)에 이조판서로 벼슬을 높여 주었다. ■ 박팽년유허비 ● 지정번호 :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8호 ● 위 치 : 대전 동구 가양동 161-1 박팽년선생이 옥중에서 사망하고 200여 년이 지난뒤 1.. 2013. 2. 26.
김제 금산사 (金堤 金山寺) ■ 금산사 백제 법왕 원년(599)에 창건된 후 신라 혜공왕 2년(776)년 지뇨율사가 충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그후 조선 선조때 임진왜란의 병화로 전부 불타버렸던것을 수문대사를 중시으로 10여명의 도반들이 35년여간에 걸쳐 재건하였다. 신라시대에는 법상종의 근본 도량이었고 임진왜란때는 의병의 근거지로 처영대사의 승병 총지휘본부이기도 했던곳이다. ▲ 모악산 금산사 일주문 ▲ 일주문을 지나 금산사로 가는 길 ▲ 금산사 ◆ 당간지주 (幢竿支柱) : 보물 제28호 높이 3,5km의 크기로 양지주가 금산사 경내에 남북으로 상대하여 있다. 이는 기단서과 간대를 완전하게 구비하고 있는 유일한것이다. 양지주의 각면에 장식된 조각 수법이 현저하며 우리나라 당간지주 가운데 가장 완벽한 형시을 갖추고 있다. 통일신라 시대 .. 2012. 1. 15.
담양 식영정 (潭陽 息影亭) - 명승 제57호 ■ 식영정 (息影亭) : 명승 제57호 식영정은 석천 임억려의 정자이다. 조선명종 15년(1560)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인 석천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 식영정 경내에는 서하당과 석천을 주향으로 모셨던 성산사가 있었느데 없어진 것을 최근 복원하였다. 석천은 이곳에서 '식영정20영'을 지었는데 김서원, 김경명, 정철등의 제자들이 차운하였으며 이들 네명을 '식영정사선'이라 불렀다. 이런 이유로 식영정을 '사선정'이라 부리기도 한다. 정철은 이곳을 무대로 성산별곡을 비롯 많은 시가를 지었따. 정자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온돌방과 대청이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 식영정 일원 ▲ 식영정 ▲ 식영정 ▲ 부용당 앞의 연지 ▲ 서하당 2011.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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