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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나들이 - 문화재

김제 금산사 (金堤 金山寺)

by 똥벼락 2012.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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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사

백제 법왕 원년(599)에 창건된 후 신라 혜공왕 2년(776)년 지뇨율사가 충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그후 조선 선조때 임진왜란의 병화로 전부 불타버렸던것을

수문대사를 중시으로 10여명의 도반들이 35년여간에 걸쳐 재건하였다.

신라시대에는 법상종의 근본 도량이었고

임진왜란때는 의병의 근거지로 처영대사의 승병 총지휘본부이기도 했던곳이다.

 

 

       ▲ 모악산 금산사 일주문

 

 

       ▲ 일주문을 지나 금산사로 가는 길

 

 

       ▲ 금산사

 

 

 

◆ 당간지주 (幢竿支柱) : 보물 제28호

높이 3,5km의 크기로 양지주가 금산사 경내에 남북으로 상대하여 있다.

이는 기단서과 간대를 완전하게 구비하고 있는 유일한것이다.

양지주의 각면에 장식된 조각 수법이 현저하며

우리나라 당간지주 가운데 가장 완벽한 형시을 갖추고 있다.

통일신라 시대 8세기 후반에 건립된것으로 추측된다.

 

       ▲ 당간지주

 

 

 

◆ 미륵전 (彌勒殿) : 국보 제62호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삼층 법당으로 조선 인조 13년(1635) 수문대사가 재건한 거물이다.

1층과 2층은 저연 5칸, 측면 4칸이며 3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다포집이다.

가장 높은 기둥은 몇 토막을 이어서 만든것이 특이하다.

이 가구 방식은 목조탑파의 양식에서 번안된 구조이다.

 

       ▲ 미륵전

 

 

 

◆ 석등 (石燈) : 보물 제228호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대장전 이건시(1922) 함께 옮겼다고 한다.

높이 3.9m로 화강암으로 건조되었다.

지대석은 방형판석이고

하대는 원형인데 복련으로 장식됐다.

간석은 팔각형이며 간석의 팔각 각우마다 선을 쳐서 우주인 듯히 강조하였다.

화사석과 개석은 팔각형이며

개석 정상에는 원대를 두고 상륜부를 받고있다.

 

       ▲ 석등 

 

 

 

◆ 노주 (露柱) : 보물 제22호

노주라 불르는 이 석조 건조물은 사실 그 용도를 알수 없다.

형태가 방형의 연화대처럼 조성된 특이한 석조물임에 착안하여 노주라 부르고 있다.

구조는 상,중,하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단마다 안상과 화형문, 귀기와 앙련, 복련등이 조각되어 있다.

특히 상대석위쪽은 보통의 석탑 상륜부와 유사하게 조각되어 있고

상륜부가 원형이며 보주 사이는 간주 형식이 특이하다.

연봉형인 보주의 조상기법으로 보아 고려 초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 노주

 

 

 

◆ 육각다층석탑 (六角多層石塔) : 보물 제27호

이 탑은 고려초의 석탑으로 봉천원에서 옮겨온 것이다.

현재의 높이는 2.18m 이며 11층 탑이다.

우리나라의 탑 대부분이 화강암으로 만들 방형탑인데 비해

이 탑은 점판암의 육각다층석탑임이 특이하다.

이색적인 각층의 체감 비례가 아름다우며

섬세한 조각 기법을 보여준다.

원래 이 탑에는 층마다 탑신이 있었으나

지금은 가장 위 2개 층의 탑신과 11개 층의 옥개석이 남아있다.

 

       ▲ 육각다층석탑

 

 

 

◆ 대장전 (大藏殿) : 보물 제827호

미륵전과 함께 건립되었으나 정유재란에 소실된것을 조선 인조 13년(1635)에 재건되었다.

건립당시 미륵전 앞에 있던것을 1922년 현위치로 이전하였다.

법당안에는 석가모니불과 가섭존자, 아난존자를 봉안하고 있다.

건물은 단조롭고 소규모이지만 정중 목탑의 변형건물로 주목되며

석가모니불 후불광배의 조각이 뛰어나다.

 

       ▲ 대장전

 

 

 

◆ 석련대 (石蓮臺) : 보물 제23호

석련대는 흔히 볼 수 있는 연화대이나 그 형태가 희귀한 것이다.

높이가 1.52m, 둘레가 10m가 넘는 거대한 연화대로 대석 전체가 1개의 돌로 되어있다.

이 대석은 1개의 돌로 되어 있으면서 여러개의 돌로 구성한듯

상,중,하대석의 양식을 정연히 갖추고 있으며

하대석의 측면 10각형으로 하여 8개 면에는 연상을 음각하고 그 안에 서화를 조각하였으며

2개 면에는 사자상을 조각하였다.

그리고 그 위로 복련판을 각변에 따라 10판을 돌려 웅려하게 표현했다.

이와 같은 조각과 장식 이외에도

중대, 상대 등에는 안상과 화문, 연판문 등을

화려한 장식적 의장법으로 자각하였다.

특히 상대석 윗면에는 중앙 부분 두 곳에 방형의 구멍이 있는데

이것은 여기에 석불입상을 세워뒀던것으로 추측하게 한다.

이 석련대는 조각 수법이 통일신라 시대의 양식을 보이고 있으나

무질서한 안상의 배치와 연판내의 사치스러운 조각 및 장식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초기로 대략 10세기경의 석조물로 추정된다.

 

       ▲ 석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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