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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나들이 - 문화재

공주 마곡사 (公州 麻谷寺)

by 똥벼락 2011.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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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

태화산 기슭에 위치하 마곡사는 조계종의 대전,충남지역 70여사찰을 관장하는 대본산이며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질만큼 봄경치가 뛰어나다.

백제 의자왕 3년(서기643)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고 고려 명종 2년(서기1172)에 보조국사가 중건하였다.

절의 이름은 신라 보철화상이 법문을 열때 모인 대중이 삼밭의 삼대 같이 많다 하여 마곡사라 이름을 지은것이란다.

가람의 배치는 태극도형으로 사찰을 감싸고 태화천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오층석탑 과 대광보전, 대웅보전 등부처님의 공간을 상징하며

남쪽으로는 영산전및 매화당, 수선사등을 배치하여 스님들의 수행공간으로 배치하였고

이를 극락교로 연결하여 스님들의 수행 목적을 일깨우고 있다.

주위에는 영은암, 대원암, 은적암, 백련암, 청련암, 부용암, 북가섭암 등의 부속암자가 있다.

 

 

     ▲ 일주문

 

 

 

◆ 해탈문 (解脫門)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6호

이 문을 지나면 속세를 떠나 불교 세계로 들어며

해탈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는 해탈문이다.

중앙 통로 양편에 금강역사상과 보현, 문수, 동자상을 모시고 있다.

고종 1년(1864)에 중수했단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된듯하다.

 

     ▲ 해탈문

 

 

 

◆ 천왕문 (天王門)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2호

천왕문은 해탈문에 이어 마곡사의 두번째 대문으로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 안쪽에는 동서남북의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인 사천왕상이 안치되어있다.

사천왕은 천상계의 가장 낮은곳은 사천왕천의 동서남북 네 지녁을 관할하는

신적 존재로 부처님이 계신다는 수미산의 중턱 사방을 지키면서

인간들이 불도를 따라 사는지를 사피어 그들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 천왕문

 

 

 

     ▲ 마곡사 전경

 

 

 

◆ 오층석탑 : 보물 제799호

방형 기단상에 라마형식으로 건립되어 있는 특수한 모양으로

경천사탑, 원각사탑과 함께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고려말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이 탑은 임진왜란 때 도괴되어 그 속의 귀중품은 당시에 없어졌다.

 

     ▲ 마곡사 오층석탑

 

 

     ▲ 마곡사 오층석탑 

 

 

 

◆ 대광보전 : 보물 제802호

이 건물은 뒷편의 애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으로

경내의 전체 건물배치상으로는 해탈물,천왕문과 일직선상에 놓여

가장 중심이 되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소실되었던 것을 조서새대 말기인

순조 13년(1813)에 다시 지은것이다.

정면5칸 측면 3칸의 단층 다포식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이며 쇠서는 끝이 날카롭게 위로 뻗쳐 있고

그 위에 연봉이 장식되어 있으며 봉황머리의 운공도 첨가되었다.

전면의 3분합문에는 꽃모양의 장식이 가미되어

내부도 2단의 우물천장에 연화문, 운학문이 그려져 있으며

불상위에는 섬세한 조각의닫집이 있어 공간구성을 한층 풍성하게 해준다.

전면 어칸 기둥머리의 요머리 조각은 내부의 화려한 구성과 함께

건물 전체를 뭉만한 장식으로 가득 채워주고 있다.

장식적 특징을 잘 살린 조선후기 건축 중 걸작품의 하나이다.

 

     ▲ 오층석탑 뒤로 보이는 대광보전

 

 

     ▲ 대광보전 현판

 

 

     ▲ 삼지창과...

 

 

     ▲ 북어를 물고 있는 모습이 드물다.

 

 

 

◆ 대웅보전 : 보물 제801호

이 건물은 백제 무왕41년(640)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마곡사의 한 전각으로

임진왜란 때 병화로 소실된 것을 조선 효종2년(1651)에 각순대사와 당시의 공주목사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것이다.

이 전각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층 팔작집이다.

기단은 막돌허튼층 쌓기이며, 이 위에 배홀림 두리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주심은 물론 주칸의 평방 위에도 짜올린 다포식으로

상하층 모두 내.외 3출목으로 쇠서 끝에 연봉을 세겨

조선시대 중기 이후 말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이 이 전각에는 석가여래볼, 약사여래불, 아미타불의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대웅보전의 현판은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라 전하여 온다.

 

     ▲ 대웅보전

 

 

     ▲ 대웅보전

 

 

 

◆ 심검당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심검당이란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란 뜻으로 스님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방이다.

심검당이 언제 지어졌는진 알 수 없지만, 정초 21(1797)에 보수공사가 이루어졌단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 건립된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ㄷ 자형으로 온돌방과 부엌 및 마루를 만들어 조선시대 상류층의 가옥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있다.

기둥은 네모기둥과 둥근기둥을 혼합하여 세웠고 마루 현판에는 효종5년(1654) 충청도 대흥의 안사곡에서 만들어진

마곡사 동종과 목어등이 있다.

 

 

     ▲ 김검당

 

 

 

◆ 김구(金九)선생 은거 기념식수

마곡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며 독립운동의 지도자인 백범 김구선생이 1896년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분노로 황해도 안악에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후 은거하여

1898년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으로 잠시 출가 수도하였던 곳이다.

조국 광복 후 선생이 이곳을 찾아 대광보전 주련의

거래관세간 유여몽중사(去來觀世間 猶如夢中事)를 보고 더욱 감개무량하여

그 때를 회상하며 향나무 한그루를 심었다.

 

     ▲ 김구선생 기념 식수

 

 

 

◆ 응진전 : 추청남도 문화재자료 제 65호

이 건물은 부처님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을 모시고 있다.

16나한은 중생에게 복을 주며 중생을 바른 법으로 인도하기를 원하는 성자를 말한다.

철종 3년(1852)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거닙된것으로 보인다.

건물 전면에만 창호를 달고 출입을 하도록 하고 나머지 삼면은 회사벽으로 마감한 특징이 있다.

 

     ▲ 응진전

 

 

 

◆ 백범 김구선생 삭발터

이 옷은 김구선생이 승려가 되기 위해 삭발했던 곳으로

선생은 상투가 잘릴 때 눈물을 흘렸던 기록이 남아있다.

 

<백범일지>

사제(師第) 호덕삼(扈德三)이 머리털을 깍는 칼을 가져왔다.

냇가로 나가 살발진언을 쏭알쏭알 허더니 내 상투가 모래위로 툭 떨어졌다.

이미 결심은 하였지만 머리털과 같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

 

     ▲ 김구선생 삭발터

 

 

 

◆ 군왕대(君王垈)

군왕대는 마곡에서 가장 지기(地氣)가 강한 곳으로 가히 군왕이 나올 만한곳이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이 곳에 몰래 매장하여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선말기에 암매장된 유골을 모두 파낸 후 돌로 채웠다.

조선 세조가 군왕대에 올라

"내가 비록 한 나라의 왕이지만, 만세불망지지(萬世不亡之地)인 이곳과는 비교할 수가 없구나" 라며

한탄하였다고 전해진다.

 

이중환의 '택리지'나 '정감록'에 보면

마곡사 계곡을 난세를 피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십승지의 하나로 꼽고 이다.

십승지는

공주의 유구,

무주의 무풍,

보은의 속리산,

부안의 변산,

성주의 만수동,

봉화의 춘양,

예천의 금당곡,

영월의 정동 상류,

운봉의 두류산(지리산),

풍기의 금학촌  이다.

 

     ▲ 군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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