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들이/나들이 - 여 행

해미성지 ; 생매장 순교성지 (여숫골)

by 똥벼락 2014. 3. 26.
반응형

 

 

 

 

 

생매장 순교성지 - 여숫골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274-10번지에 위치해 있는

해미성지의 본 지명은 해미순교성지이다.

해미천 좌우 주변에서 1866년부터 1872년 사이에

1000명 이상의 신자들이 생매장 당했다.

이 순교자들의 유해는 대두분 홍수로 유실되고

1935년에 그 일부를 발군하였다.

 

 

 

 

 

 

 

 

 

 

 

 

 

 

 

 

1801년의 신유박해 이전 해미에서는 인언민(마르티노)과 이보현(프란치스코)이 순교하였고,
1811~1839년의 기해박해 이전에는 김진후(비오)가 1814년에 옥사한 것을 비롯하여 모두 8명이 순교하였다.
또 1866년 이후의 병인박해기에는 122명에 이르는 순교자가 이곳에서 탄생하였다.
이처럼 해미의 유명 순교자는 모두 132명에 이르는데, 여기에 무명 순교자 47명 이상의 수를 더하면,
기록으로 확인되는 박해기의 순교자 총수는 179명 이상이 된다.
한편 해미 순교자들의 순교 형식은 교회 순교록을 통해서만 67명이 확인되는데,
그 중에서 교수형이 33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참수와 옥사가 각각 5명, 병사가 4명, 생매장이 3명, 장사가 3명, 미상이 14명으로 나타난다.

해미읍성 안의 진영 동헌 앞은 순교자들이 갖은 문초와 형벌 속에서도 신앙을 증거한 장소가 되며,

읍성의 옥은 신앙 증거 장소요 중요한 순교 터가 된다.


 

 

 

 

 

 

 

 

 

 

 

 

이곳 해미순교성지는 여숫골로 불린다.

여숫골은 '예수 마을'의 잘못된 음차로 생겨났다.

예수 마리아를 '여수 머리'로 알았던 순박한 민초들이 살 았던 곳이

바로 이곳 여숫골이다.

천주교 박해 때 1000여명의 신자가 생매장 당한 곳이다.

 

 

 

 

 

 

 

'순교 자리개 돌'은 해미읍성 서문 밖 수구위에 놓여 있던 돌다리로

병인 대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자리개질로 처형했던 사형도구이다.

그동안 서문 밖 순교지에 보존중이어쓰나

해미도시계획 도로개설로 인하여 생매장 순교성지(여숫골)로

2009년 1월 8일에 옮겨 보존하고 있다.

 

 

 

 

 

 

 

 

아래의 사진부터는 하늘에서 본 해미성지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