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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나들이 - 문화재

해미읍성(海美邑城) - 사적 제116호

by 똥벼락 2014.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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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 해미읍성 ()

 

● 지정번호 : 사적 116호 (1963년 1월 21일 등록)

● 위     치 : 충남 서산시 해미읍 읍내리 16
● 건립연대 : 조선시대

● 테     마 : 유적건조물

 

고려 말부터 국정이 혼란한 틈을 타서 왜구가 해안지방에 침입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바,

이를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하여 조선 태종17년(1417)부터 세종3년(1421) 사이에

당시 덕산(德山)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을 이 곳에 옮기고자 축성(築城)되었으며,

효종3년(1652)에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營)이 청주로 옮겨가기 전까지

230여 년간 군사권을 행사하던 성으로 있다가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설되고 해미현의 관아가 이 성으로 옮겨졌으며,

1914년까지 겸영장(兼營將)이 배치되는 호서좌영으로서

내포지방의 군사권을 행사하던 곳이었다.

 

 

 

 

해발 130m인 북동쪽의 낮은 구릉에 넓은 평지를 포용하여 축조된 성으로서,

성벽의 아랫부분은 큰 석재를 사용하고 위로 오를수록 크기가 작은 석재를 사용하여 쌓았다.

성벽의 높이는 4.9m로서 안쪽은 흙으로 내탁되었으며 성벽 상부 폭은 2.1m 정도이다.

성문은 동·서·남·북 4곳에 있는데 네모지게 잘 다듬은 무사석(武砂石)으로 쌓았으며,

주 출입구인 남문은 아치모양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읍성에는 동헌을 비롯하여 아사(衙舍) 및 작청(作廳) 등의 건물들이 빼곡히 있었으며,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유적도 일부 남아 있다.

1974년에 동문·서문이 복원되었고,

1981년 성내 일부를 발굴한 결과

현재의 동헌 서쪽에서 객사와, 현재의 아문 서쪽 30m 지점에서 옛 아문지가 확인되었고,

관아외곽석장기지(官衙外廓石牆基址)가 발견되었다.

성의 둘레에는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탱자나무를 돌려 심어서 탱자성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 서산해미읍성회화나무 (瑞山海美邑城회화나무)

 

● 지정번호 : 시도기념물 172 (2008년 4월 10일 등록)

● 위     치 :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32-2

● 시     대 : 조선시대

 

사적 제116호인 해미읍성 내 위치하는 회화나무는

지역주민들에 의해 호야나무로 불리고 있는데,

이 나무는 1866년 병인박해와 관련이 있다.

당시 해미읍성은 호서좌영으로서 겸영장이 토포사를 겸하여

국사범을 처단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어 내포지방의 천주교 신도들을 압송하여 처형하였는데,

이 나무에 철사줄로 매달고 고문을 하여 많은 천주교인들이 처형을 당하였다.

 

 

 

 

■ 옥사

 

천주교도들을 추옥하고 문초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터만 남아 있던 옥사를 발굴 작업 뒤 복원, 재현 하였다.

1935년에 간행된 '해미 순교자 약사 (海美 殉敎者 略史)'의 기록을 토대로 목원하였으며

내옥과 외옥이 있고, 각각 정면 3칸 건물로 남녀의 옥사가 구분되어 있다.

1790년부터 100여 년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은 국사범으로 규정하여 이곳에서 투옥 및 처형을 하였는데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도 이곳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교 했다 전해진다.

 

 

 

 

 

 

 

 

 

 

 

 

 

 

 

 

 

 

 

■ 동현 (東絃) 

 

동현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비롯한 현감겸형장의 집무시로

관할지역의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등이 행해지던 건물이다.

해미 현감겸영장은 인근 12개 구, 현의 병무행정과 토포사(討捕使)를 겸한 지위였다.

 

 

 

 

 

 

 

 

 

 

■ 내아 (內衙)

 

관리와 가족들이 생활하던 관사(官舍)로 살림집이다.

해미읍성 내아는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2000년 11월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아래의 사진부터는 헬리캠을 이용해

해미읍성을 항공촬영한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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