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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나들이 - 문화재

우금치 전적지 (牛禁峙 戰蹟地)

by 똥벼락 2007.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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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치 전적지 (牛禁峙 戰蹟地)

 

사적 제387호

소재지 : 공주시 금학동

 

 이 곳은 제2차 동학농민운동 때의 당시의 최대 격전지로 동학농민군의 원혼이 서려 있는 곳이다.

 1894년 2월 전라도 고부에서 농민들이 관리들의 폭정과 부패한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해

보국안민(保國安民)과 제폭구약(除暴救約)을 맺은 후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하고 개혁을 추진하였다.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일제의 내정 간섭이 심해지자 2차 봉기를 하였다.

농민군은 동학의 남,북접 연합으로 충청도 감영인 공주를 공격하기 위해 공주 주변인 효포, 널티, 우금치 등에서 관군(官軍), 일본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신식무기로 무장한 진입군에 의해 농민군들은 이 우금치에서 마지막으로 처절하게 패배를 당함으로써

체포되거나 죽임을 당하였다.

 

 

      ▲ 우금치 터널    

 

       ▲ 동학혁명군위령탑

 

       ▲ 다시 살아나리 우금티

 

         

            다시 살아나리 우금티

 

          백성은 하늘이다.

          동학년 햇불 맨몸으로 일어선

          오늘도 백성은 하늘이다.

          짓밟힌 가슴

          온갖 설움받던 것들 함께 모여

          타오르던 벌판

          굴절된 역사의 어리석음으로

          채 오르지 못하고 쓰러진

          아  사무치는 우금티

          산맥을 품고 달려온 이들아

          두눈 크게 뜨고 보아라 여기

          사람사는 세상으로 흐르는 강물

          소길 발길 다지고 다져보는 흙담

          알알이 쌓아 새긴 돌무지탑 염원으로

          울려퍼지는 자주 평등 대동 세상

          어와 내 사랑 우금티에

          백성은 하늘이다

 

          동학농민전쟁백일주년 우금티창작단

 

 

       ▲ 슬픈 과거속에 묻힌 우금치에도 봄은 오고...

 

       ▲ 동학혁명군위령탑

 

1894년에 이루지 못한 갑오농민전쟁이 100년이 지난 1994년에

우금치는 사적 제387호로 지정되었다.

우금치에는 1973년에 세운 동학혁명군위령탑이 있다.

이 탑은 5,16 군사 구데타로 정권을 잡은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자신의 구데타를 농민군의 혁명를 잇는다는 명목으로 세우려했다.

그래서인지 탑 앞뒤로 세겨진 새김글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을

누군가가 뭉개놓은 흔적도 보인다. 

 

      ▲ 동학혁명군위령탑 전면에 세겨진 새김돌

 

       ▲ 동학혁명군위령탑 전면에 새겨진 새김돌에 뭉개진 글씨 大統領 朴正熙

 

      ▲ 동학혁명군위령탑 후면에 시겨진 새김돌, 역시 돌로 뭉개진 부분이 있다. 

 

      ▲ 동학혁명군위령탑 뒷쪽의 새김돌에 뭉개진 부분

 

       ▲ 동학혁명군위령탑 뒷쪽의 새김돌에 뭉개진 부분

 

      ▲ 동학혁명군위령탑 뒷쪽의 새김돌에 뭉개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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